검색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글의 CEO 래리 페이지

사진 = 구글

1. 래리 페이지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새로운 검색 문화를 가져다준 래리 페이지는 구글(Google)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또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구글의 1대 최고경영자 (CEO)였으며, 2011년부터 2015년에는 구글의 3대 최고 경영자였습니다. 그리고 2015년 10월에는 구글이 알파벳 주식회사(Alphabet lnc.)로 재구성되면서 래리 페이지는 알파벳의 공동 창립자이며 최고경영자가 됩니다. 알파벳은 구글을 비롯하여 여러 기업들을 포함하는 계열사를 통합하는 구조입니다. 알파벳의 계열사에는 구글, 칼리코, 캐피털 G 구글 파이버, 딥마인드, 직소, 룬, 웨이모 등이 있습니다. 래리 페이지는 이러한 통합된 구조로 기업을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2018년 6월, 레리 페이지의 개인 자산은 포브스가 선정한 부자 순위 9위인 534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2023년 7월 25일 원화로 기준은 약 68조2697억 원입니다. 

2. 그의 일생 

래리 페이지는 1973년 3월 23일에 미국 미시간주 이스트랜싱 (East Lansing, Michigan)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을 대학교 컴퓨터 엔지니어링 교수였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래리 페이지는 6살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PC가 보급되지 않았을 그의 유년기에도 이미 워드프로세서로 숙제를 했습니다. 그는 미시간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컴퓨터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래리 페이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르게이 브린을 만났습니다. 그는 래리 페이지와 함께 구글의 공동창립자입니다. 세르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지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습니다. 당시 세르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지의 2년 선배입니다. 그래서 세르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즈에게 캠퍼스 투어를 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만나자마자 논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항상 같이 다녔다고 합니다. 그 이후 래리 페이지는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BackRub"이라는 검색 엔진 프로젝트를 시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훗날에 구글의 시초가 됩니다. 

3. 구글의 탄생

그 후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만든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을 가지고 구글을 창업했습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인터넷에 수 많은 정보를 담겠다는 뜻으로 10의 100제곱인 "구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구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다른 기업이 있어 구글로 바꿨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대학원생 신분이라 사업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리콘 밸리에 가서 차고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그때 빌린 차고는 유튜브 최고 경영자인 수잔 보이치키의 차고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까지 계속되는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4. 구글에서 그의 시간

구글의 타기업과 다른 자유로운 기업문화는 상당 부분 래리 페이지의 경영방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엔지니어가 아닌 직원이 엔지니어를 관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으로 운영자를 해고 하려 했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레리 페이지는 20대 초반에 최고 경영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에릭 슈미트가 최고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래리 페이지는 구글의 기업공개를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 앞서 언급한 구글이 2015년 알파벳 주식회사(Alphabet lnc.)로 재구성되면서 래리 페이지는 알파벳의 공동 창립자이며 최고경영자가 됩니다. 현 시점에는 그의 역할은 경영보다 앞으로의 미래를 제시하는 자문가에 가깝습니다. 이런 자문가적인 행동은 에릭 슈미트에게 CEO를 물러준 시점부터 그랬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를 5000만 달러에 인수한다고 했을 때 이런 결정은 에릭 슈미트가 아닌 래리 페이지가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점을 봤을 때 래리 페이지는 현재에도 최고 경영자 자리는 아니지만 구글이 더 큰 기업으로 만드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