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는 곳에 투자하라, 피터 린치

피터 린치

1. 피터 린치의 일대기

Peter Lynch(피터 린치)는 미국에 있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1944년 추운 겨울인 1월 19일에 태어났습니다. 피터 린치의 아버지는 회계사였기 때문에 상당한 자본을 가지고 있어서 피터린치는 부유한 삶은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피터린치가 7살 때 암을 선고받았으며 3년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한 순간에 가난해진 피터 린치의 가정은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일을 하지 않았던 피터 린치의 어머니는 하루에 일을 두 개를 하였으며, 피터 린치는 골프장에서 캐디 일을 했습니다.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다시 기회가 주어집니다. 피터 린치가 골프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설리번 이라는 사람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설리번이 우산을 잃어버렸는데 피터린치가 열심히 번 돈으로 그에게 우산을 사준 것이죠. 그렇게 피터린치를 본 설리번은 피터 린치가 보스턴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피터 린치는 골프장에서 일하면서 부자들이 주식 얘기를 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식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긍정적인 곳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에 피터 린치는 보스턴 대학에서 금융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투자 방식은 과학적인 방식이었는데요. 피터 린치는 주식이 과학적이지 않고 인문학과 관련 있다 생각했습니다. 특히 논리학 같은 부분에서 말입니다. 피터 린치만의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다만, 이 졸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수익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피터 린치는 생각하게 됩니다.

 

피터 린치는 주위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고 꾸준히 사용할 제품에 대해 투자한다는 투자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Fiying Tiger이라는 항공 운송 업체가 성장할 것이라 생각해 모아 둔 돈으로 주식을 매입합니다. 그 당시 한 주의 가치는 7달러였습니다. 3년 동안 그 주식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피터 린치는 캐디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 인내심이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 인내심 끝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그가 샀던 주식이 주당 80달러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당시 경영 대학원을 다닌 피터린치는 등록금을 다 낼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해졌습니다. 다만 경영 대학원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주가를 분석하기에 피터 린치가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에는 자신이 다음에 투자 할 기업만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베트남 전쟁의 규모가 더 커졌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더 많은 병사를 뽑았습니다. 그중 피터린치가 선별되었죠. 피터 린치가 복무한 위치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타지에 온 피터 린치가 한 일은 여전히 자신이 다음에 투자할 기업을 분석하는 일이였습니다. 피터 린치는 주가가 10배 이상 오를 거 같은 기업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사탕수수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국 주식중계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탕수수와 관련된 주식을 많이 사게 됩니다. 하지만 그와의 생각과 다르게 농부들은 하이 리스크를 피하는 편이었고, 그 주식은 망하게 됩니다. 피터 린치는 이에 눈으로 확인된 시장만 투자하겠다고 자신만의 새로운 투자 철학을 갖게 됩니다. 

2. 새로운 시작

잉이렇게 자신의 재산이 사라진 피터린치는 그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과거 피터린치의 멘토였던 설리번을 통해서 그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자산 운용사 중 하나였던 피델리티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취직하게 됩니다. 그동안 쌓아 온 경험으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시장에서 이기고 있던 피터린치는 그 당시 피델리티의 회장에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 당시 피델리티의 회사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죠. 그 당시 피터린치는 이 무너져 가는 회사를 다시 살릴 구원책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회장은 피터린치를 피델리티의 자회사였던 마젤라 펀드의 부서장으로 임명시킵니다.

 

피터린치는 자신만의 포트 폴리오로 회사를 영업했습니다. 그 결과 한 곳 "타코벨"에서 투자의 10배 이상의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피터 린치의 펀드는 투자율 20%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다시 강세장이 돌아왔을 때 다른 펀드의 평균 수익률을 18%였다면 피터 린치는 51%가 넘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피터 린치를 월가의 스타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습니다. 5개 종목 중 3개만 맞춰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충분하다는 것을.

 

그렇게 항상 시장을 이겨 온 피터린치는 11년간 피델리티에서 일한 후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 당시 그의 나의 46세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훗날 그가 말하길 이천 개가 넘는 주식번호는 외우고 있지만 자신의 딸의 생일을 잊은 자신에게 큰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보여준 11년간의 퍼포먼스는 가치투자를 하는 투자가들에게 있어 큰 영감을 주었고 멘토가 되었습니다. 

 

"애널리스트마저 외면할 때야말로 

그 업종, 혹은 기업에 투자할 때다."

-피터 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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